"우리는 댓글 폭력의 공범, 언론사 댓글창 관리 나서야
[인터뷰] 책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 저자, 세계일보 기자 정지혜
"네이버 데이터랩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지난 3년간 댓글 작성자의 남녀 비율은 평균적으로 75대 25로 집계된다. 남성은 여성보다 댓글을 세배나 더 많이 쓴다. 알고 보면 그리 놀라운 현상은 아니다. 2021년 한국의 국가성평등지수는 100점 만점에 75.4점인데, 8대 분야의 성평등 점수 가운데 유독 저조한 것이 '의사결정(38.3점)' 분야다. (중략) 대부분의 공적 공간에서 남성이 발언권을 주도적으로 갖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작동하는 성별 권력이다."정지혜 세계일보 기자가 쓴 책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 중 "댓글은 왜 남녀 문제인가"란 글의 일부다.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왜 공론장은 성별화돼버렸을까. 정 기자는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반영이고 전문가들 의견을 들어보면 온라인 공간에서 고정관념이 교정되는 게 아니라 더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현실에서) 소수자들은 말해봤자 무시당하고 공격만 당하다보니 온라인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정 기자를 만났다. 정신없는 일간지 기자 생활 가운데 책을 쓰게 된 계기를 물으며 대화를 열었다. 출판사가 먼저 저자에게 출판을 제안을 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책이 나오기 쉽다. 하지만 저자가 원고를 먼저 써서 출판사에 투고하는 경우 거절당하는 게 다반사다. 정 기자는 "1차 초고를 다 쓰고 출판사를 찾아 헤맸고 '안 팔릴 것 같다'고 직접 말해주는 곳도 있었다"고 투고 과정을 회상했다. 간절하게 그가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뭘까? 정 기자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 책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를 쓴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 사진=정지혜 제공
-어떻게 책을 쓰게 됐나? 기자들 상당수가 악플을 받고 있고 댓글창을 뒤덮는 혐오와 비난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지만 책까지 내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결국 당사자성이 있는 사람이라 쓰게 된 것 같다. '젊은 여성' 위치에 있으니, 문제의식이 크게 와닿았다. (댓글창의 문제점 등을) SNS에 올렸는데 산발적으로 기록하다 사라지니까 제대로 남기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라는 제목이 다소 도발적이다. 상당수 사람은 댓글을 쓰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댓글을 '폭력'으로 표현한 것과 '공범'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댓글은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론장으로만 얘기해왔는데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됐다. 댓글을 쓰거나 읽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다고 댓글 가해자나 피해자만 댓글과 관련됐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수많은 방관자가 있고, 기자들도 이러한 댓글 폭력을 알면서도 방관자가 될 수 있다."
-책 내용 중 공론장이 성별화됐다는 지적이 눈에 띈다. 누구나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 의사결정의 경험이 온라인에도 반영된다는 점은 언론에서도 제대로 짚어주지 않았던 부분이다.
"온라인에서 동등한 발언권을 갖는다는 건 순진한 환상이고 우리가 믿고 싶은 이야기다. 처음에는 댓글창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일어나는 일을 보면 그렇지 않았다. 네이버 댓글 통계를 보면 40대, 남성, 화이트칼라가 많이 댓글을 달고 있다.(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17년) 이들은 의견을 말하는데 거침이 없다. 다같이 연대해서 차별댓글을 반박하면 여론이 바뀔 수도 있지만 시간이나 장비가 부족하거나 (의사결정 관련해) 자신감이 없는 소수는 말해봤자 무시당하다 보니 (침묵을) 내면화를 하는 것도 있다."
-가수 정준영에게 불법촬영을 당한 피해자가 2021년 5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포털 뉴스 성범죄 기사 댓글창을 비활성화해달라'는 글을 올리고 같은해 말 한겨레를 시작으로 성범죄 기사 댓글창 삭제가 현실화됐다.(책 70쪽) 이태원참사 이후 관련 기사 댓글창을 닫는 언론사들도 많다. 댓글창을 닫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댓글 폭력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에서 아무 조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실제 우리 회사도 기자들이 요청하면 댓글창을 닫는다. 이게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공론장 문화가 성숙하지 않으니 이 정도는 해봐야 한다고 본다."
-성범죄와 이태원참사 말고 댓글창을 닫았으면 하는 기사들은 어떤 분야가 있을까?
"댓글을 보고 상처받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기사들, 민감한 주제로 인터뷰를 하는 등 취재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기사들, 소수자 관련 기사들은 댓글창을 닫을 수 있다. 내가 욕먹는 건 괜찮은데 취재원을 단두대에 세우게 되는 기사면 발제부터 하기 어렵다."
-포털 다음에서 댓글창을 없애고 24시간 동안 채팅창 형태로 열어둔 뒤 대화를 없앤다. 이 조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카카오톡처럼 변해서 불편해진 측면이 있다. 채팅 내용을 보려면 위로 스크롤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카톡처럼 바뀌니 발언이 가벼워졌다는 지적도 있다. 댓글은 영구박제되기 때문에 읽는 사람들이 힘들어했는데 그 부분은 개선됐다. 다만 본격적으로 사람이 개입해야 한다. AI(인공지능)가 관리하는 게 중립적이라고 하는데, 실제론 한계가 있다. 포털은 장소만 제공하니 언론사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언론사는 포털에 달리는 댓글에 별도로 사람을 뽑아 관리할 생각까지는 없다. 해외 언론사 중에는 '커뮤니티 모더레이터'라며 댓글 관리만 하는 사람을 따로 뽑고 있다."
-네이버 등 다른 포털이나 언론사에서도 댓글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언론사에서 표현의 자유 등을 이유로 댓글창 관리에 소극적이다. 일선 기자들뿐 아니라 데스크들이 이에 대한 필요성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책에서 인용한 최지향 교수의 연구 중 "댓글 활동을 하는 이들이 온라인 유료 뉴스 서비스에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금액(5098원)의 수준이 도리어 그렇지 않은 이들(7842원)보다 낮았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댓글을 열심히 다는 사람들이 충성독자이거나 뉴스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포털도 더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야한다. 인공지능에 안 걸리도록 교묘하게, 욕 한마디 안 쓰고도 혐오 댓글을 쓸수 있다. 언론사에선 아직 댓글 관리를 자신들의 일로 못 느끼고 있다. 아직도 댓글 문제만 나오면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데 그 얘기는 이미 지나갔다. 누구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데 왜 또 다른 누구는 이를 누리지 못하는지 얘기해야 한다. 온라인 공론장이 공평하지 않으니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 교수의 조사 결과는 한국의 포털 뉴스 환경에서 벌어지는 기현상이다."
▲ 책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
-책에서 이런 부분도 인상적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 발언>에서 국가개입과 법적규제보다 더 바람직한 해법으로 대항발언이라는 맞대응을 제안한다. 모욕적인 발언에 대한 저항적 전유나 재수행, 정치적 실천으로서 맞받아치기, 전복하기, 해체하기 등을 하자는 것이다."(233쪽), "KBS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4년간 시청자들과 직접 소통했더니 악플이 확실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꾸준히,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 말 걸고 얘기를 듣는 과정은 사소한 감정싸움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댓글 전쟁을 상당 수준 약화할 수 있다."(247쪽) 이를 보니 언론에서 댓글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기사를 작성해야 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댓글을 활용해 기사를 쓰기도 하는데 대부분 댓글 의견을 보여주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댓글을 비판하는 건 마치 독자와 반목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필요한 기사다. 혐오 댓글을 반박하는 코너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돈이 되는 기사가 아니어서 외면받는 것 같다. 기사에 대해 조회수(PV)를 얘기하는 건 뉴스를 다루는 언론사나 포털이 공적인 일을 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조회수 이야기를 금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일단 조회수를 얘기하기 시작하면 기사를 그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따옴표 저널리즘'도 혐오발언 등을 확산하거나 악플을 용인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조회수로 기사를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의 연장선에서 보면 따옴표 저널리즘은 쉽고 가성비 좋은 방식이다. 언론이 현상에 개입하면 안 되고 가치중립의 관찰자여야 한다고 하는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주는 기사가 필요하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단순 인용하는 기사에서 벗어나 해설·분석 기사가 더 많아야 한다. 독자들을 달아오르게 하는 게 아니라 진정시켜줬으면 좋겠다. 달아오르게 했을 때 돈이 되는데 지금은 너무 뜨거워져있다."
-'정지혜의 빨간약'이라는 고정 칼럼을 쓰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이 그랬듯 빨간약을 먹고 나면 보이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예민하게 분석해보는 코너"라고 소개를 했는데, 기억에 남는 칼럼 하나 소개해달라.
"최근 신림동 성폭행(강간살인) 사건 등 범죄가 이어지면서 <인하대 사건, '가해자 호명' 없는 선정적·신파적 언어의 해악>(2022년 7월17일)이란 글이 생각났다. 언론보도가 이런 사건을 보도할 때 관행적으로 안타까워하긴 하지만 신파적으로 쓰고 만다. 선정적인 묘사나 도구화로 조회수 팔이에 이용된다는 부분도 지적했다. 젊은 여성들은 더 이상 이런 식의 뉴스를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여건이 된다면 써보고 싶은 기사는 뭐가 있나?
"최근 흉기난동이나 살인예고 등을 주로 누가 하는가, 왜 하는가에 대해 분석기사를 써보고 싶다. 경찰에서도 분석을 부담스러워 한다. 10~20대 남성이 많으니 젠더 갈등이 커진다고 보고 있더라. 한번 들춰서 분석하는 게 시작이다."
-다음 책을 쓴다면 어떤 내용을 써보고 싶나?
"저출생 관련해 최근 기사에서는 인구학자들이 주로 나온다. 출산하는 당사자인 여성들이 보면 거리가 느껴지는 기사들이다. 여성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고 싶다. 정작 여성들은 저출생을 왜 그렇게까지 걱정하는지 모르겠다며 건조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출생률을 고민한다면 비혼출산이나 입양을 장려해야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가부장제를 유지하려는 건 아닌가. 저출생 관련해 잘 나오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해외에서는 댓글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정 기자는 책에서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의 댓글 작성 가이드라인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즈는 댓글을 남기기 위해 작성자의 이름과 지역을 제공해야 하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댓글이 기사 주제에 벗어나지 않아야 하며 댓글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댓글을 관리해 독자들이 안전하고 질 좋은 정보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두 언론사의 댓글 가이드라인 중 일부 내용이다.
뉴욕타임즈
△ 기사에 대한 강한 의견·비판을 환영하며 기사에서 논의하는 내용에 대한 비판적 댓글을 승인함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 다음의 경우는 게시가 금지된다. 비방, 개인적 공격, 외설적이고 천박한 내용, 신성모독, 상업적 홍보, 사칭, 비논리적 댓글, 자사 기자에 대한 개인적 공격, 댓글 검토 정책에 대한 과도한 논평 등
△ 일반적으로 댓글창은 기사 발행 후 24시간 동안 열어놓으며 이후에는 닫는다. 댓글 검토 담당자들은 새 기사의 댓글창을 관리하러 이동한다.
월스트리트저널
△ 댓글 작성자는 실명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사려 깊은 토론을 존중하며, 실명 사용이 이용자에게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 기사에 대한 건설적 비판을 환영한다. 다만 자사 기자들에 대한 개인적 공격, 기사 내용을 호도하는 악의적 댓글은 용납하지 않는다.
△ 누군가를 공격하고 괴롭히거나 위협하는 댓글, 폭력을 조장하는 댓글,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하는 발언, 타인의 독점적 권리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을 작성해선 안 된다.
△ 고의로 허위 정보나 오해 소지가 있는 댓글을 쓸 경우, 조직적인 캠페인성 댓글에 해당하는 경우 게시가 금지된다.
그 외에 가디언은 이민이나 인종 관련 주제의 기사에는 댓글을 막고 있다. CNN, 로이터통신, BBC, 미국 공영라디오 NPR, 테크 전문매체 '리코드', 과학기술 매체 '파퓰러 사이언스' 등은 댓글창 없이 게시판이나 SNS로만 독자 의견을 받는다. 시사주간지 아틀랙틱은 댓글 기능을 없애고 우수한 독자 의견을 모아 투고 섹션에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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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기자는 책에서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저널의 댓글 작성 가이드라인을 소개했다. 뉴욕타임즈는 댓글을 남기기 위해 작성자의 이름과 지역을 제공해야 하고, 월스트리트저널은 댓글이 기사 주제에 벗어나지 않아야 하며 댓글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댓글을 관리해 독자들이 안전하고 질 좋은 정보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두 언론사의 댓글 가이드라인 중 일부 내용이다.
뉴욕타임즈
△ 기사에 대한 강한 의견·비판을 환영하며 기사에서 논의하는 내용에 대한 비판적 댓글을 승인함에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 다음의 경우는 게시가 금지된다. 비방, 개인적 공격, 외설적이고 천박한 내용, 신성모독, 상업적 홍보, 사칭, 비논리적 댓글, 자사 기자에 대한 개인적 공격, 댓글 검토 정책에 대한 과도한 논평 등
△ 일반적으로 댓글창은 기사 발행 후 24시간 동안 열어놓으며 이후에는 닫는다. 댓글 검토 담당자들은 새 기사의 댓글창을 관리하러 이동한다.
월스트리트저널
△ 댓글 작성자는 실명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사려 깊은 토론을 존중하며, 실명 사용이 이용자에게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 기사에 대한 건설적 비판을 환영한다. 다만 자사 기자들에 대한 개인적 공격, 기사 내용을 호도하는 악의적 댓글은 용납하지 않는다.
△ 누군가를 공격하고 괴롭히거나 위협하는 댓글, 폭력을 조장하는 댓글,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어하는 발언, 타인의 독점적 권리나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을 작성해선 안 된다.
△ 고의로 허위 정보나 오해 소지가 있는 댓글을 쓸 경우, 조직적인 캠페인성 댓글에 해당하는 경우 게시가 금지된다.
그 외에 가디언은 이민이나 인종 관련 주제의 기사에는 댓글을 막고 있다. CNN, 로이터통신, BBC, 미국 공영라디오 NPR, 테크 전문매체 '리코드', 과학기술 매체 '파퓰러 사이언스' 등은 댓글창 없이 게시판이나 SNS로만 독자 의견을 받는다. 시사주간지 아틀랙틱은 댓글 기능을 없애고 우수한 독자 의견을 모아 투고 섹션에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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